비로소 제대로 부산을 보았다, 흘러내릴 듯 겹겹이 쌓인 삶의 흔적 너머로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부산 '초량동'

그림=임형남
부산 하면 역시 바다다. 부산역에 닿으면 나 같은 외지 사람들은 주로 바다 가까이 난 길을 따라 이동한다. 광안대교를 건너 해운대 방향으로 바다를 건너갈 때 미래도시를 방불케 하는 초고층 호텔과 주상복합 건물군이 보여주는 다이내믹한 풍경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동성을 대변해준다.

그곳이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라는 생각은 부산 출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 확실해진다. 어떤 모임에서 처음 보는데도 유난히 살갑게 다가와 싹싹하게 인사를 하고 자기주장을 잘하면서 쉽게 가까워지는 멤버가 있다면 십중팔구 부산 사람이다. 매사에 적극적이면서도 붙임성이 좋은 기질은 그곳 사람들 모두 타고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에 비해 부산이라는 도시는 여러 번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낯선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내게는 전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 그건 물론 남들이 다 그렇듯 어릴 때 친구들과 멋모르고 피서를 가서 질리도록 해변을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헤맸다거나 혹은 범어사나 태종대 같은 관광지를 수박 겉 핥듯 다녔던 이후로는, 출장 가서 볼일만 보고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도시의 안쪽을 통 가까이 들어갈 만한 기회가 없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역시 일 때문에 부산에 갔다가 역 바로 앞 원도심에 해당하는 마을에 가보게 되었다. 초량동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6·25전쟁 이전부터 원주민이 많이 살았던 오래된 곳이라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바닷가에서 본 떠들썩하고 화려한 풍광과는 조금 다른, 부산의 생살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처음부터 거기 가려던 건 아니었다. 그날 모처럼 생긴 여유 시간에 둘러볼 곳을 찾다가, 먼저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길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좁고 짧은 편인데, 오가는 사람들은 책을 사러 갔다기보다는 나처럼 구경 나온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골목을 몇 번 왕복하다 가장 책이 많아 보이는 대우서점에 갔더니, 주인장은 내가 찾는 책을 분명 가판대에서 본 듯한데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일단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라고 했다. 예술, 건축 분야 서가가 제법 큰 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머물렀지만 역시 찾는 책은 없었다. 시간을 두고 익히지 않으면 음식에 맛이 배지 않듯이, 잠깐 둘러보면서 요행으로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내길 바란다는 것은 역시 무리한 욕심이었다.

큰길로 나가 건너편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어디를 가든 가장 사람이 붐비거나 유명하다는 곳은 웬만하면 피하고, 그냥 평범한 골목을 거니는 걸 좋아한다. 하물며 영화까지 나와 크게 흥행을 한 국제시장 같은 곳은 발길이 잘 가지 않는 편인데, 마침 거기까지 갔으니 들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깡통시장을 지나 국제시장으로 접어들자, 평일 낮이라 그랬는지 한산했고 노점들이 늘어선 교차로에선 한쪽으로는 부산타워가, 한쪽으로는 목 언저리까지 집들이 차오른 보수산이 보였다.

어느 건물 2층에 중고 레코드점이 있기에 인터넷에는 올라 있지 않은 절판된 음반이 있나 궁금해서 좁은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젊은 점원은 컴퓨터로 검색해보며, 내 기대와는 달리 요즘은 자기들도 들어오는 목록을 홈페이지에 그때마다 다 올리고 있으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굳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자주 사이트를 확인해 보라고 일러주었다.

별 성과 없이 택시를 타고 역으로 돌아가는데 별수 없는 관광객처럼 보였는지 기사가 산복도로를 아느냐고 물었다. 내륙으로부터 달려나온 산맥의 힘줄들이 뻗어 가다 해안에 이르러 급하게 멈춘 듯, 가파르게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부산의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가는 길을 조금 돌아 산복도로 중에서도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망양로에 내렸다. 망양로 아래가 바로 초량동이고, 그 언덕배기에 어깨를 붙이고 자리한 집들을 훑고 내려가면 바로 부산역전이 나온다.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마을들은 초입에 양민들의 집이 지어지고, 경치가 좋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마을 어르신 역할을 하는 반가가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근대 이후 발전한 부산이나 목포 같은 개항기 항구 도시는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든 노동자들이 기존의 주거지 위쪽으로 숨 가쁘게 올라가 산동네에 정착했다. 경사지에 틈새도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집들은 6·25전쟁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도시 인프라가 미처 감당하지 못한 결과다.

언덕에서 가장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시인 유치환이 경남여고 교장을 두 번 지낸 인연을 모티브로 만든 '유치환의 우체통'이 얼른 사진을 찍고 가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들어 알 만한 명사의 태어난 곳, 살았던 곳, 세상을 뜬 곳마다 여기저기 이름을 빌려 사업을 벌이는 것은 참 어색한 일이지만, 이 작은 우체통은 제법 정감이 갔다.

요즘 어느 도시나 주거와 상업 공간이 잘 짜인 도시계획하에서 만들어지는 신도심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유서 깊은 원도심이 쇠락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의 성공 이후 많은 지자체가 오래된 길에 이름을 붙여 의미를 만들고 관광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부산 역시 초량이바구길에 이어 산복도로 주변 지역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위적으로 무엇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장소의 가치가 굳이 예산을 들여 시행한 불필요한 덧칠로 훼손될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근처 카페에서 초량동의 옛 모습을 담은 엽서를 하나 사서 글을 적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우연한 하루 동안의 산책을 담은 엽서는 내년 이맘때쯤 나에게 도착할 예정이다. 바쁘게 달려온 부산의 시간이 잠시 느려진 곳, 흘러내릴 듯 겹겹이 쌓인 흉터 같은 삶의 흔적들 너머로, 비로소 제대로 부산의 바다가 보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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