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구야, 벨트 못 따면 죽어서 오겠다는 약속은 왜 지켰냐

[스포츠 다큐 - 죽은 철인의 사회] ‘돌주먹’ 박종팔, 비운의 복서 김득구를 추억하다

고 김득구 선수의 동아체육관 동기이자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박종팔씨가 경기도 남양주시 자택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상념에 잠겨 있다

고 김득구 선수의 동아체육관 동기이자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박종팔씨가 경기도 남양주시 자택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상념에 잠겨 있다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 링에서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매치가 열렸다. 챔피언 레이 맨시니(미국)와 맞선 한국의 무명 복서 김득구는 13회까지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14회 맨시니의 강력한 펀치를 맞고 KO 당했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나흘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김득구는 가족 동의로 장기를 기증하고 이국땅에서 숨을 거뒀다. 복싱계는 충격에 빠졌다. 세계 타이틀매치가 3분 15회전에서 12회전으로 줄었고, 스탠딩 다운 등 선수 보호 장치가 강화됐다. 
  

무작정 상경, 동아체육관서 만나
나와 헤글러 챔프전 무산되자
대신에 김득구·맨시니 격돌 성사
성냥갑 관 만들며 필승 각오 다져

복싱은 자신과 싸움, 난 13㎏ 감량
요즘 선수들 정신력·훈련량 떨어져
자신의 일에 미치는 게 헝그리 정신

슬픈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김득구의 어머니는 3개월 뒤 아들 뒤를 따라갔다. 주심이었던 리처드 그린은 ‘미리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은 나 때문에 복서가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7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촉망받던 강타자 맨시니도 더는 링에 오르지 못했다. 
  
김득구의 스토리는 2002년에 영화 ‘챔피언(감독 곽경택, 주연 유오성)’으로 재탄생했다. 영화에서 김득구의 동아체육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 선수가 ‘돌주먹’ 박종팔이다. WBA 미들급 세계 1위였던 박종팔은 당대 최고 강타자 마빈 헤글러(미국)에게 도전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헤글러 측에서 계약을 위반해 대결이 무산됐고, 대신에 김득구-맨시니 경기가 성사됐다. WBA·IBF(국제복싱연맹)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박종팔은 52전 46승(39KO) 5패 1무의 전적을 남겼다. 지난 18일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 자락에 있는 자택에서 박종팔 챔피언을 만났다. ‘진정한 헝그리 복서’ 김득구를 추억하고, 헝그리 스포츠 복싱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야기했다. 
  
권투선수,라스베가스에서 맨시니선수와 시합중 김선수

권투선수,라스베가스에서 맨시니선수와 시합중 김선수

위 사진은 김득구와 맨시니의 세계 타이틀매치 장면, 아래는 김득구 장례식 모습이다. 영정 옆에서 관을 든 사람이 박종팔. 남양주=신인섭 기자, [중앙포토]

위 사진은 김득구와 맨시니의 세계 타이틀매치 장면, 아래는 김득구 장례식 모습이다. 영정 옆에서 관을 든 사람이 박종팔. 남양주=신인섭 기자, [중앙포토]

  
#무작정 상경 #동아체육관 #빈대 천국
권투선수 김득구.(뒷줄 왼쪽 두번째)

권투선수 김득구.(뒷줄 왼쪽 두번째)

김득구 선수의 약혼식 모습.

김득구 선수의 약혼식 모습.

질의 :김득구 선수와는 공통점이 많아 친해졌다면서요.
응답 :내가 58년 개띠인데 나보다 한 살 많다고 해서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지요. 나도 열다섯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새엄마 밑에 있기 싫어 전남 무안에서 무작정 상경했는데, 득구도 아버지 죽고 새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다가 강원도 고성에서 올라왔잖아요. 잠은 체육관 마룻바닥에서 잤는데 빈대가 어찌나 많은지. 코피가 많이 나고 땀도 많이 흘려서 빈대 천국이었죠.
  
질의 :김득구는 어떤 선수였나요.
응답 :당시 복싱이 중흥기라 세계 타이틀매치 하고 나면 하루 10명, 20명씩 복싱 배우겠다고 찾아왔어요. 체육관이 좁아서 잽 한번 뻗을 틈도 없을 정도였죠. 몸뚱아리 맨주먹 하나 믿고 올라온 친구들이니 정신력이 오죽했것소. 득구는 그중에서도 어떡하든지 권투로 일어서 보겠다는 집념이 대단했어요. 미쳤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쇼맨십과 리더십이 강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팔방미인이었죠.
  
질의 :김득구가 동양챔피언이 되자마자 너무 일찍 세계타이틀에 도전한 건 아닌가요.
응답 :득구는 왼손잡이인데 특이하게 인파이터(안으로 파고드는 공격형)였어요. 상대에 따라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을 적절하게 구사했죠. 당시 내가 WBA 랭킹 1위여서 헤글러가 지명방어전을 해야 하는데 내 인지도가 떨어져 흥행이 안 된다고 생각해 계약을 파기했어요. 그 바람에 득구가 다시없는 기회를 잡은 거죠. 난 지금도 헤글러와 붙지 못한 게 한이요. 헤글러도 왼손잡이에 인파이터인데 내가 왼손잡이는 잘 잡거든.
  
질의 :김득구가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면서요.
응답 :맨시니하고 자기하고 둘 중의 하나는 죽을 거라는 말을 했어요. 성냥갑으로 조그만 관 모양을 만들어서 갖고 다니고 미국 갈 때도 가방에 넣어서 갔어요. 지금 득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득구야, 정말 잘 싸웠다. 네가 자랑스럽다. 그런데 벨트 못 따면 죽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왜 지켰냐’라고요.
  
권투선수,김선수의 자취방에 써놓은 좌우명

권투선수,김선수의 자취방에 써놓은 좌우명

  
#90억 사기 #인생 3라운드 #권투는 정직
권투선수,라스베가스에서 맨시니선수와 시합중 김선수

권투선수,라스베가스에서 맨시니선수와 시합중 김선수

박종팔은 열에 아홉 번은 KO로 이기는 화끈한 복싱으로 인기가 높았다. 80년대 중반 세계 타이틀매치 한 경기에 5000만원이 넘는 파이트 머니를 받았다. 서울 변두리 땅값이 평당 1만원 하던 시절, 그는 돈을 받는 족족 땅을 샀다. 은퇴하고 계산해 보니 29군데 땅 시가만 90억원이 넘었다. 그 돈을 그는 친구·선후배들에게 떼이고 사기당하면서 몽땅 날려버렸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우울증이 왔고, 부인을 폐암으로 먼저 보냈다. 떨어져 죽을 바위를 찾아 수락산을 헤매던 그는 부인이 된 이정희씨를 만나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은 “인생 3라운드는 KO승 말고 판정승하자”고 외치는 명강사가 됐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부인에게 “자네가 나를 치마폭으로 받아분 사람이요”라며 손을 덥석 잡았다. 
  
질의 :요즘 복싱 인기가 예전같지 않죠.
응답 :복싱 중계를 안 해 주잖아. 스타가 없으니 중계가 안 붙고, 그러니 스폰서도 줄고, 관중도 주는 악순환이 되는 거지. 솔직히 후배들한테 미안하지만 요즘 복서들은 정신력에서 뒤지고 운동량도 적어요. 우리 세대처럼 운동시키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해요. 다 도망가불지.
  
질의 :현역 때 다섯 번 졌는데, 다시 붙어도 못 이기겠다 싶은 상대가 있나요.
응답 :없어요. 나 스스로한테 진 거니까. 모두 체중 조절 실패 때문이지요. 나는 시합 앞두고 12~13㎏을 뺐어요. 큰 경기 몇 번 이기고 해이해지면 반드시 감량에 실패합니다. 그러면 몸이 무겁고 똑같이 맞아도 회복이 느려요. 내가 오벨 메히야스(베네수엘라)한테 두 번 졌는데 두 번째는 6회 버팅(머리 받기) 반칙으로 앞니 5개가 날아갔어요. 그래도 체중 조절만 잘했으면 안 졌을 겁니다.
  
질의 :복싱을 배우려는 젊은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응답 :건강과 다이어트에 복싱만 한 게 없어요. 그렇게 즐기세요. 그게 아니라 프로 선수가 되겠다면 복싱을 천직으로 알고 ‘이거 아니면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권투에만 미쳐야 돼요. 나도 득구도 그렇게 했어요. 그게 진정한 헝그리 정신이죠.
  
그가 사진촬영을 위해 샌드백을 가볍게 치기 시작했다. 영화 속 김득구의 대사가 떠올랐다. “권투만큼 정직한 경기도 없어. 너 팔 세 개인 사람 봤어?”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김득구 유복자는 치과의 … 2011년 엄마와 함께 맨시니 만나
2011년에 만난 레이 맨시니와 김지완씨. [중앙포토]

2011년에 만난 레이 맨시니와 김지완씨. [중앙포토]

김득구가 맨시니에게 도전할 당시 약혼녀 이영미씨는 사내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아버지를 보지 못한 아들 김지완씨는 잘 자라 지금은 치과의사를 하고 있다. 2011년 1월 중앙SUNDAY에 실린 미국 현지 인터뷰에서 맨시니는 “매년 11월 13일에는 김득구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치과대학에 다닌다고 기자가 알려주자 “정말 잘 됐다. 반갑고 고맙다. 언젠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맨시니는 샌타모니카에서 영화 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영화 ‘챔피언’ 촬영팀이 미국 현지 로케를 갔을 때 맨시니가 도움을 주고 조언도 했다고 한다.

   
바라던 대로 맨시니는 김득구의 가족과 2011년 6월에 만나게 된다. 미국의 전기 작가 마크 크리걸이 집필한 ‘레이 맨시니 전기’ 출판이 계기가 됐다. 서울에 온 크리걸은 김지완씨를 만나 맨시니가 초대하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했다. 지완씨는 “인제야 제 인생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의 끈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경기를 봤는데, 30년 전에 엄마 배 속에 있던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웠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가슴 깊이 느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샌타모니카에서 지완씨를 만난 맨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만나고 싶었다네. 그런데 막상 만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 몇 초의 정적이 흐른 뒤 “어머니부터 소개해 드릴게요”라며 지완씨가 어머니 이영미씨를 가리켰다. 이씨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맨시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제가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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