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세리머니 마라토너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마라톤 은메달 획득한 릴레사 두 팔로 엑스자 그리며 결승점 통과

에티오피아의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세리머니 
릴레사 ”나는 돌아가면 죽거나, 감옥에 갇힐 것” 
올림픽 메달 박탈 가능성도 있어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26)가 21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서 두 팔을 엇갈려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26)가 21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서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려 보이고 있다. 릴레사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다.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리우/AP 연합뉴스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페이사 릴레사(26·에티오피아)가 에티오피아 정부를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몸짓을 하며 결승점에 통과했다.

 

릴레사는 21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에서 출발해 구하나바하 해변도로를 돌아 다시 삼보드로무로 돌아오는 2016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 42.195 풀코스를 2시간9분54초에 달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두 팔을 엇갈리며 엑스(X)자를 그렸고, 시상대에서도 같은 행동을 했다.

 

이 행동을 궁금하게 여긴 현지 취재진들을 향해 릴레사는 시상 직후 인터뷰에서 “에티오피아 정부가 내 부족인 ‘오로모’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내 친척들은 감옥에 있는데, 그들이 민주적 권리를 주장하면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오로미아 족의 항의 시위를 지지하는 뜻으로 손을 들어올렸다”고 말했다고 <데페아>(dpa)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는 “나도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면 죽음을 당하거나 투옥될 것”이라며 “아직 결정을 못했지만, 아마도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국영방송은 자국 선수인 릴레사가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을 삭제하고서 올림픽 마라톤 방송을 중계했다.

 

릴레사가 용기를 냈지만, 메달을 유지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올림픽 헌장은 “올림픽 관련 시설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지역 안에서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제50조 3항)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8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 육상 200m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에서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리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다 메달을 박탈당했다. 반면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팀의 박종우가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아이오시의 조사를 받았지만, 메달은 유지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겨울패럴림픽에서 우크라이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후 손으로 메달을 가리는 침묵 시위를 통해 자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지만, 메달을 박탈 당하지는 않았다.

 

메달 박탈 여부와 관계없이 릴레사의 용감한 세리머니는 에티오피아의 사회적 불평등과 인권 문제에 대해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에티오피아에서 오로모 족은 전체 인구(약 9900만명)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최대 부족이지만 오랜 기간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차별을 받아왔다. 반면, 인구 구성비 27%로 2위인 암하라 부족이 엘리트 집단으로 국가 권력과 자원을 장악하고 있으며, 암하라어도 공용어로 가장 널리 쓰인다.

 

오로모 족의 누적된 불만은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로 터져나왔고, 에티오피아 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실탄 발포까지 서슴지 않는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해왔다. 시위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수도 아디스아바바 주변 오로미아 지역을 수도에 강제 편입시키려던 계획 때문이었다. 오로모 족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는 것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당시 두 달간 이어진 항의 시위에서 1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오로미아 지역의 수도 편입 계획을 철회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그치지 않고 있다. 리우 올림픽이 개막한 직후인 지난 7일에도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 주와 북서부 암하라 주의 몇몇 도시들에선 “부의 불공평한 분배”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보안군의 총에 맞아 최소 97명이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오로미아 지역에서만 그때까지 4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지만, 에티오피아 정부는 희생자 수가 많이 부풀려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조직된다는 점에 주목해, 이나라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운영 중인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고 나섰다. 에티오피아 의회에는 야당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어, 정부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없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윤형중 기자, 조일준 기자 hjyoon@hani.co.kr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