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 무어의 신작 &lt;다음 침공은 어디?&gt;의 기초 아이디어는 국영방송에서조차 청년층의 ‘한국 탈출’을 다룬 특집다큐를 내보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거의 주문맞춤생산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판씨네마 제공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의 기초 아이디어는 국영방송에서조차 청년층의 ‘한국 탈출’을 다룬 특집다큐를 내보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거의 주문맞춤생산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판씨네마 제공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언제나 너무 재밌다는 게 문제다.

 

뭔가. 재밌다는 게 왜 문제인가. 재밌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맞다. 두 시간짜리 영상 테마파크 어트랙션이 되었든, 인간 존재 양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 되었든, 관객의 ‘재미’ 향한 기대가 충족되거나 넘어서는 일은 영화와 관객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점을 항시 염두에 두는 영화감별업에서 재미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마치 홍삼 가공판매업계에서 사포닌을 문제 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 것인데, 그러한 위태로운 발언을 서두부터 꺼내는 이유는 마이클 무어가 들고나오는 소재는 언제나 지극히 미국적인 사안 및 관심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이클 무어가 파고드는 문제들은 인류 공통의 보편타당한 이슈라기보다는 현재 시각 미국에서 뜨겁게 논쟁중인 첨예한 이슈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문제는 그런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을 보며 대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 동조-개탄-폭소-울분-비판-반박 등등의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에요”

 

이래도 되는가? 미국 국내의 문제가 이리도 알알이 우리 문제처럼 와 닿아도?

 

한국과 미국은 우방을 뛰어넘은 동맹이자 동맹을 뛰어넘은 혈맹이므로 그것은 너무 당연한 일 어쩌구저쩌구 기타 등등에 대해서는 뭐, 굳이 논하지 않으련다만, 아무튼 마이클 무어 영화의 이슈들을 한국 사회에 대입 및 치환하는 것은 구구단 1단만큼이나 용이한 일이고,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역시 이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한국 관객으로서 <다음 침공은 어디?>에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① 여러 나라들에 ‘침공’하여, 미국에선 거의 멸종된 멋진 점들을 접수한다는 이 영화의 기초 아이디어가, 국영방송에서조차 청년층의 ‘한국 탈출’을 다룬 특집다큐를 내보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거의 주문맞춤생산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침공’하는 나라들이 한국인들의 전통적 이주/이민 희망국인 캐나다, 호주 등이 아닌 ② 요 몇 년 새에 새롭게 주목/각광받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핀란드, 네덜란드 등)을 위시한 유럽국가들(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로 두루 구성되어 있는 것은, 작금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 영화시장을 겨냥, 캐스팅/로케이션/시나리오 등등에서 한국 관련 뭔가를 슬쩍슬쩍 끼워 넣고 있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들의 마케팅기법을 과감히 도입, 한국 시장을 제2의 전략거점으로 삼으려는 마이클 무어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까지 하지만, 그런 의도 전혀 없었다는 것은 뒤에서 얘기하도록 하고. 아무튼.

 

마이클 무어가 이 나라들에서 필히 뽑아먹어야 할 멋진 점들로 거론하고 있는 포인트들 역시 연 8주의 유급휴가+15일의 유급 신혼휴가+5개월의 유급 육아휴가(이탈리아), 학교 숙제나 객관식 시험이 거의 없음은 물론 교육으로 돈을 버는 행위를 아예 법으로 금지시킨 최고 수준의 교육(핀란드), 조리사가 직접 가져다주는 정찬 코스요리형 학교 급식(프랑스) 등등, ③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감탄과 개탄을 동시에 터뜨릴 사안들로 포진되어 있다. 보아하니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는 미국 학교 급식의 사진을 보고 “이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에요”라는 프랑스 학교 급식 조리장의 평에 못내 좌절하던데, 급식 관계자들이 학교 급식에 들어갈 돈을 떼먹고 아이들에게는 폐기물급 식자재를 먹인 최근 한국의 사례를 보면 다소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해 자국 학생들은 물론 외국 유학생에게까지 완전 무상 대학교육을 제공하는 슬로베니아는 물론, 회사의 이사회에 남성 여성 비율 각각 40%를 법으로 명기하고 있는 아이슬란드까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럽국가들의 사례는 물론,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의 사례까지 섭렵함으로써 ④ “걔네들이야 뭐, 워낙 잘사니까”라는 자조 섞인 ‘애써 눈 돌리기’의 가능성까지 차단하고 있어, 한국 관객들을 가벼운 그로기 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물론 의도한 바 없이.

 

이쯤에서 많은 분들께서 목소리 드높이실 것으로 믿는다. 그런 것들은 그 나라의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떼어 본 것일 뿐, 그 나라의 실업률은 얼마고, 저 나라의 자살률은 얼마고 등등등.

 

맞다. 더구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 방송사 기자, 세계적 회사의 시이오(CEO), 검사, 당수 등, 상당수 그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구성돼 있다. 반드시 기득권층이 아니더라도, 학교교사, 급식조리장, 안정된 직장을 가진 부부 등 최소한 ‘평균’에는 걸쳐 있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당연히도 마이클 무어의 의도하에 선정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침공’한 나라엔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이야기가 이토록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마이클 무어의 탁월한 유머 감각 때문이다. 마이클 무어는 유쾌한 선동가이자 노련한 필름메이커다. 예컨대 그가 선택한 국가 및 그 이슈들의 순서만 찬찬히 짚어 봐도 그가 얼마나 치밀한 선동가인지를 알 수 있다. 서두의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너무 재밌어서 문제’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기도 하다. 모든 선동에는 단순화가 필수적이고, 단순화엔 필연적으로 폭력성이 뒤따르므로.

 

하지만 되짚어 보자. 이 영화가 하려는 것은 ‘파라다이스 찾기’가 아니다. 예컨대 이탈리아에 간 마이클 무어는 이탈리아의 실업률을 다분히 의식한 듯 “내 임무는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이 영화가 하려는 것은 ‘파라다이스 찾기’보단 ‘파라다이스의 부품 찾기’에 가깝다. 파라다이스라는 단어가 거슬린다면 그냥 “좋은 사회”(이것 역시 영화 속 표현)라고 하자.

 

물론 어떤 멋진 것이 제대로 구현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좋은 것들을 하나씩 구현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가 ‘좋은 사회’로 변해간다는 믿음 또한 또 다른 가능성일 수 있다. 영화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마이클 무어스럽지 않은 간접적이고 은근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고, 그 또한 그의 유머 못지않은 설득력을 보여준다.

 

미국적 관심에 국한된 소재지만
‘한국 탈출’ 상황 맞춤생산한 듯
유급휴가·무상교육 등 고루 다뤄
슬로베니아·아이슬란드 등 섭렵

 

탁월한 유머감각 지닌 선동가
“내 임무는 꽃을 따가는 것”
간접적이고 은근한 어조로
‘좋은 사회’를 향한 믿음 드러내

 

마이클 무어는 ‘그의 영화는 너무 재밌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유머 감각을 지닌 유쾌한 선동가이자 노련한 필름메이커다.&lt;한겨레&gt; 자료사진
마이클 무어는 ‘그의 영화는 너무 재밌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유머 감각을 지닌 유쾌한 선동가이자 노련한 필름메이커다.<한겨레> 자료사진

 

공감하기 힘든 ‘여성 지도자’론

 

정작 이 영화의 설득력이 가장 무너지는 대목은 그가 회심의 일타로서 후반부에 배치해둔 이슈, 즉 ‘여성 지도자’라는 이슈를 들고나올 때다. 영화에서 아이슬란드의 한 유력 여성은 ‘여성이 지도자가 되면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만, 성별을 떠나 적어도 현재 이 땅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는 이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때론 역 성차별의 위험까지도 감수하는 ‘남성 본성 vs 여성 본성’이라는 구도의 무리한 논리를 마이클 무어 자신이 실제로 액면 그대로 믿고 있는지 아닌지야 그 자신만이 알 일이나, 어쨌든 이 이슈가 지금 미국 최고의 정치적 관심사와 대단히 큰(도 매우 완곡한 표현이지만)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의무교육을 이수한 자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유머와 테크닉, 즉 ‘재미’는 이렇게 특정한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추진체로 쓰일 때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리고,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다 버려도 좋다. 뉴스만 봐도 종말론의 소재가 좀비 빼곤 다 등장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에, 이 영화가 ‘침공’한 나라들의 단면들은 그야말로 직격으로 꽂혀든다. 이 세상에 파라다이스 같은 건 없다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는 곳을 굳이 지옥으로 만들 이유도 없다고 믿는, 그렇게 믿고자 하는 우리에게.

 

한동원 영화칼럼니스트
한동원 영화칼럼니스트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