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日군인 30~40명 상대했다"…위안부 피해자 참상고발

misyus 0 741 2016.12.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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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발간 '위안부 이야기'에 담긴 피해자 사례
"반세기가 흘렀지만 기모노만 봐도 끓어올라"


29일 서울시가 공개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에는 10명의 위안부 피해자 증언이 실려있다. 당시 피해상황뿐 아니라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가오기까지 전 과정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기술돼 참상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김소란 할머니의 경우 본인 요청으로 가명으로 실렸다. 1926년 경북 군위에서 7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1년 병원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언니와 함께 일본인 노인을 따라 부산을 거쳐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시골로 갔다. 

"사흘 뒤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쉰이 넘은 일본인 할아버지는 나를 발길로 차고 말도 못하게 했다.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에 한번 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했다."

김소란 할머니는 미국 폭격을 피해 산을 넘어 도망치다 미군이 운영하는 마닐라 포로수용소에 들어갔다가 귀향하게 됐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시고 내 결혼 뒤 심장병으로 한달만에 돌아가셨다. 조마조마하며 결혼했지만 남편도 어떻게 알아가지고 매일 구박했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견한 필리핀 루손포로수용소의 위안부 포로심문보고서에도 김 할머니가 1945년 5월19일 루손 제1포로수용소에서 심문을 받고 10월29일 40여명의 위안부 여성과 함께 선박 '마리'를 타고 일본으로 출발한 것으로 기록됐다.

평안남도 남포시 출신 박영심 할머니(1912~2006)는 1938년 3월 '처녀공출'에 나선 일본순사에게 강제로 이끌려 평양으로 압송됐다. 이후 중국 난징으로 끌려가 일본군 병영에서 500m 떨어진 긴스이루 위안소에 20명의 조선인 여성과 갇혔다.

"일본군은 하루 30명 정도 왔다. 저항하면 다락방으로 끌려가 발가벗겨진 채 매를 맞았다. 일본병을 상대하는 하루하루는 인간의 생활이 아니었다."

긴스이루에서 3년을 지내고 버마 랑군을 거쳐 라시오 위안소에서 2년을 보냈다. 매일 포탄이 날라오는 중국 쑹산 최전선지대에서 하루 30~40명의 군인을 상대했다. 1944년 중국군의 반격으로 일본군은 전멸했고 박 할머니는 도망나와 중국군 쿤밍 포로수용소로 갔다. 미국 NARA에서 발굴한 쿤밍 포로심문 보고서의 명단에도 박 할머니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는 2000년 여성국제법정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으나 숙소 목욕가운을 보고 위안소에서 입던 일본 기모노가 생각나 먹지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증언은 비디오영상으로 대체됐다. 2003년 11월에는 '내가 어떤 곳에 끌려갔는지 알고싶다'며 중국 난징과 쑹산을 답사했다. 위안소였던 곳에서 박 할머니는 "괴로워서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위안부 이야기'는 비매품으로 국공립도서관에 배포될 예정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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